양치를 하며 거울을 보는데 머리카락에 뭐가 반짝하는거 같다. 속으로 칠칠치 못하게 또 양치질하다 머리카락에 치약을 묻혔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최근 몇 달 사이에 이런 경험이 꽤 몇 번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자기전에 머리카락을 빗으로 왼쪽에서 오른쪽, 오른쪽에서 왼쪽, 뒷목덜미에서 앞으로 빗어주면 액순환에 도움이 되어 머릿카락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생각났던 밤인가보다. 어쩌다 생각나면 한번씩 하는 머리카락 빗어주기를 마무리 하려는 찰라에 얼핏 머리카락에 다시 반짝하는 무언가가 보인다. 그 당시에는 "욕실 조명에 나의 건강한 머리카락이 반짝여보이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거 같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문득 내게 흰머리가 있다고 지나가는 말로 얼핏 알려준다.
그 말을 들어서인지, 그리고 몇 일인지 몇 주가 다시 지나고 거울을 보다 문득 머리카락을 넘기는데 반짝하는 것이 보이기에 흰머리카락인가 하며 살펴보니 한가닥 보인다. 다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니 반대쪽에도 한가닥 보인다. 그랬던거다. 치약이 묻은줄 알고, 욕실 조명에 반짝인다고 생각했던 내 머리카락은 grey hair!! 흰머리 였던거다.
아버지는 흰머리가 언제쯤부터 났더라. 아빠는 흰머리가 삼십 중후반에 있었던거 같기도 한데, 머리숱이 많아서 사십 후반이 되도록 표가나지 않았던거 같다. 아버지는 건강이 악화되면서 갑자기 할아버지처럼 변했었다.
어머니는 주기적으로 염색을 해온탓이었는지, 오십 중반이 될때까지도 흰머리가 보였던 기억은 특별히 없다. 육십을 앞둔 요즘은 염색을 중단해서인지, 가끔은 흰머리가 보인다.
어머니를 닮으면 나도 오십은 되어야 흰머리가 나겠구나 생각했었는데,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아빠를 닮았거나 기타 환경적인 요인이거나.
이번 해 봄에 한국에 갔을때 만난 친구의 머리에 유독 눈에 띄게 흰머리가 많이 보였었는데, 자기 사업 준비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가보다 라고 짐작했었는데, 나도 그런가보다. 요즘 한창 본사 사람들과 일하며, 좌절감을 느끼곤 했는데, 그게 다 흰머리가 되어 나타나는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스트레스 받아가며 일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든다. 몇년 전 타이레놀 광고에선 열정적인 당신이라서 (일을 열심히 해서) 두통이 오는거다 라는 메세지의 광고 카피를 내기도 했었지만, "열정적인 당신, 두통 생기면 흰머리도 따라온다"가 더 맞는 말 아닐까.
아무튼 간에, 흰머리를 보니, 조금 덜 스트레스 받으며 일해야겠구나 생각을 하게 된다.
아시아인들이 다른 인종의 나이를 잘 가늠하지 못하듯이, 다른 인종들은 아시안의 나이를 잘 가늠하지 못한다. 그래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끔 bottle shop에서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기도 하고, 회사에선 내 나이가 가늠이 되지 않는지, 대 놓고 궁금해하는 사람도 몇 있다.
내 눈으로 흰머리카락을 발견하고 잠깐 부선을 떨었더니, 남편이 긍정적인 멘트 한방을 날려준다. 흰머리가 좀 더 생기면 이제 사람들이 더이상 십대 청소년이나 이십대로 보지 않고, 좀 더 무게있는 존재로 대해줄꺼라고. 이거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하하하.
흰머리가 나는건 막을 수 없고, 염색을 하기엔 내 모발이 그리 건강하지도 않고, 염색을 해서 굳이 감추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흰머리가 많아짐에 따라 점점 더 강하면서도 우아해지길 바래본다.
'이런저런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샘 성폭행 사건 원문 및 이를 보고 드는 생각들 (0) | 2017.11.04 |
---|---|
격몽요결 (0) | 2017.10.31 |
가족 여행 (0) | 2017.10.31 |
누나, 나 시댁이야 ?! (0) | 2017.10.04 |